그러나 이 효율성 제로의 세계에서 묵묵히 자신의 시간을 쌓아가는 이들이 있다. 오는 5월 22일부터 27일까지 광주 무등갤러리에서 열리는 기획전 ‘사이_SAI’는 바로 이 ‘만드는 사람들’의 치열한 고민과 노동의 가치를 담아낸 전시다.
섬유, 금속, 도자, 패션, 생활소품 등 서로 다른 분야에서 활동하는 다섯 명의 작가가 참여한 이번 전시는 단순히 공예품을 나열하는 자리가 아니다. 예술과 쓰임, 가치와 가격, 전통과 오늘이라는 모호한 경계 위에서 분투하는 핸드메이드 작가들의 생생한 현실을 정면으로 드러낸다.
그동안 핸드메이드 공예는 ‘생활소품’이나 ‘취미 공예’라는 프레임에 갇혀 저평가되기 일쑤였다. 작가의 철학과 오랜 기술이 집약된 결과물임에도, 대중은 늘 “얼마나 실용적인가”, “얼마에 살 수 있는가”를 먼저 묻는다. 공예 작가들이 현장에서 가장 자주 듣는 말이 “예쁘다” 다음에 이어지는 “그래서 얼마예요?”라는 사실은, 작품에 담긴 ‘과정’보다 ‘상품의 가격’이 먼저 소비되는 씁쓸한 현실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이번 전시에 참여한 안정민 작가(섬유)는 전통 원단을 재구성한 파우치를 통해 ‘가치와 가격 사이’를 논한다. 안 작가는 “이 파우치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시간이 있다”고 말한다. 천 조각을 고르고 이어 붙이며 균형을 맞추는 고된 과정은 겉으로 드러나지 않지만, 핸드메이드의 진짜 가치는 바로 그 ‘보이지 않는 시간’에 존재한다는 것이다. 손으로 만든다는 이유로 기성품과 쉽게 가격을 비교당하는 현실 속에서, 안 작가는 공예가 지닌 노동의 숭고한 의미를 다시 묻는다.
이춘미 작가(도자)는 ‘통제와 우연 사이’에서 피어나는 아름다움을 이야기한다. 인간의 손에서 시작된 도자는 결국 가마 속 ‘불’에 의해 완성된다. 예측할 수 없는 균열과 색의 변화를 실패가 아닌 자연스러운 ‘결과’로 받아들이는 이 작가의 태도는, 오직 완벽한 결과와 효율만을 요구하는 현대 사회에 묵직한 울림을 준다.
일상의 쓰임과 예술적 표현, 그 아슬아슬한 경계
민대식 작가(금속)는 ‘착용과 조형 사이’의 경계를 탐구한다. 장신구는 인간의 몸 위에 놓일 때(착용)와 독립된 공간에 배치될 때(조형) 서로 다른 맥락을 가진다. 민 작가는 공예가 단순한 소비재로 전락하지 않고, 일상적인 쓰임을 가지면서도 동시에 깊이 있는 감상의 대상이 될 수 있는 경계를 모색한다.
전통 의상을 현대적인 감각으로 재해석하는 민세영 작가(패션)는 ‘전통과 오늘 사이’를 잇는다. 민 작가는 “전통은 과거의 형태를 그대로 박제하는 것이 아니라, 오늘의 감각으로 계속 이어가는 과정”이라고 정의한다. 익숙한 전통 기법 위에 현재의 시선을 더한 그의 작품은 온고지신(溫故知新)의 살아있는 감각을 전한다.
마지막으로 강리라 작가(생활소품)는 일상에서 사용하는 가방 작업을 통해 ‘쓰임과 표현 사이’를 파고든다. “사용하기 위해 만들어졌지만 동시에 바라보기를 원한다”는 그의 말처럼, 실용적인 가방에 작가의 시간과 취향을 투영함으로써 일상 속으로 걸어 들어간 예술의 가능성을 증명해 보인다.
이번 전시의 타이틀인 ‘사이’는 다섯 작자가 마주하고 있는 현실적인 경계의 이름이기도 하다. 작가와 기업 사이, 귀함과 쓰임 사이, 작품과 상품 사이, 그리고 공동체와 경제 사이.
실제로 많은 공예 작가들이 작품 활동과 생계라는 지독한 현실을 동시에 고민한다. 순수 예술로 인정받기에는 지나치게 실용적이고, 기성 상품으로 보기에는 너무 많은 시간과 공이 들어간다. 대량생산 체계에서는 효율이 떨어지고, 미술시장에서는 ‘공예’라는 이유로 가볍게 소비되는 것이 이들의 현주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왜 손으로 만드는 일을 멈추지 않는가.
전시 ‘사이_SAI’는 관람객들에게 조용히 질문을 던진다. 예술은 반드시 엄숙한 갤러리 안에만 존재해야 하는가? 우리가 매일 쓰는 물건은 예술이 될 수 없는가? 그리고 이 초고속 시대에 ‘손으로 무언가를 만든다는 것’은 어떤 의미를 갖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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